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평가 (문단 편집) === 히틀러의 군사적 평가 === 소련을 공격하고도 성과가 없자 지휘관들과 장군들을 믿을 수 없으므로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며 주요 작전들에 개입하고 그 이전에는 룬트슈테트와 괴링의 주장을 믿고 지상군의 진격을 멈추고 공군으로 [[됭케르크 철수작전|됭케르크를 공격하지만 성과 없이 철수하는 영국군]]을 곱게 보내주는 등 상당한 실책이 있었다. 그러나 실책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제법 있는 편이다. [* 이건 룬트슈테트를 위시한 보수적인 독일 장교들의 문제에 더 가깝긴 하지만. 자세한 전말은 전격전의 전설에서 나와있다.] 그리고 내용 중 대부분은 히틀러 혼자만의 실책이 아니라 장성들의 의견 중 하나를 골랐다가 문제가 생긴 것이고 오히려 독단적인 판단이 의외로 대박을 친 사례도 있다. 독일의 패전 이후 독일의 장성들은 회고록 등에서 모든 잘못을 히틀러에게 떠넘기는 경향이 있었다. 당장 앞의 다이나모 작전만 봐도 전부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성들을 히틀러 혼자 막은 것이 아니라 장성들의 의견이 대립되는 상태였다. 히틀러의 군사적 결정으로 인한 승리들은 비록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이 결정들이 2차 대전의 결정적인 국면에서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명백하다. 앞서 히틀러의 수많은 실책들이 있었으나 애초에 히틀러가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나치 독일은 그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치 독일에게는 대단한 업적인 셈이다. 연합군 지휘부의 경우 [[샤를 드골]]은 뛰어난 장군이 정계에 진출한 케이스라 다른 지도자들과 상황이 전혀 다르며, [[이오시프 스탈린]]은 뛰어난 전시 지도자였지만 군사적인 능력은 처참했으며[* 스탈린의 군사적인 능력이 뛰어났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억지에 가깝다. 스탈린이 직접 개입하고 주도한 작전들은 대부분 말아먹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겨울전쟁]]. 원래 군부가 입안한 작전은 대부분의 병력을 헬싱키 공격에 투입한다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작전이었지만, 전력을 쓸데없이 분산시키는 복잡기괴한 작전으로 바꾼 스탈린의 결정 덕분에 소련군은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살리지 못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외에도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었을 때 무리한 공격 명령을 끊임없이 내려 대부분의 병력을 소진했고, 1942년 여름에 또 무리한 공세를 퍼부었다가 실패했다. 반대로 1942년 이후부터 소련군이 대승을 거둔 작전들은 스탈린이 승인하기만 할 뿐, 입안과 진행은 휘하 장군들이 다 했다. 그래도 적백내전에서 준수한 군공을 세우긴 했지만, [[세묜 부됸니]]의 예를 보면 알듯이 아무리 처음에 좋은 전공을 세워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지휘관은 명장이라 할 수 없다. 결정적으로, [[러시아 내전]]에서 스탈린이 저지른 삽질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군사적인 능력에 한해서는 히틀러가 한 수 위라고 볼 수 있는 게, 히틀러는 군사적인 실책을 많이 저지르긴 했지만, 자기가 주도적으로 밀어붙여서 대성공을 거둔 사례도 꽤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침공]]이나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에 거둔 성공적인 기습이 그 예. 하지만 비록 군사적인 능력은 히틀러 이하였어도, 정작 전시 지도자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인 외교적, 정치적, 행정적인 능력은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훨씬 뛰어났다.], [[윈스턴 처칠]]은 보기에 따라--가 아니라 확실히-- 히틀러 이하라고 할 만큼 군사적 안목이 형편없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그의 국가인 영국이 승전국이었기에 망정이지 두 차례 모두 지거나 두 차례 중 한 번이라도 졌다면 지금보다 그의 무능한 군사적 식견이 더 드러났을 것이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갈리폴리 전투]]만 봐도 답 나온다. 오죽하면 그의 정적들이 잘난 척하는 처칠의 모습을 보기 싫으면 갈리폴리라는 말을 하면 된다고 하고 그의 앞에서는 사람들이 갈리폴리 전투를 언급하는 걸 싫어했다고 할까. 그나마 처칠 본인은 실책에 어느 정도는 책임을 지기도 했다. 물론 본인이 민주국가의 인물이고 최고 지위에 있지 않았기에 가능했지만. 히틀러도 독재자가 되기 전에는 [[맥주홀 폭동]]으로 인해 붙잡혔을 때는 솜방망이 처벌이기는 하지만 처벌을 받았듯이 말이다. 다만 2차대전 개전 이후 본인의 삽질에 대해 책임은 지지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노르웨이 전역의 패배는 처칠 탓이 컸지만 체임벌린만 갈리고 오히려 처칠이 총리가 되었고,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롬멜이 날뛸 수 있던 것도 처칠이 롬멜이 원하는 대로 영국 8군을 전장으로 내몬 것이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몽고메리가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처칠의 공격명령을 상큼히 다 씹고 제자리를 고수하며 롬멜의 소모를 기다린 후 가한 공세 덕에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전세를 바꿀 수 있었다.] 민주국가인 영국은 유능한 지휘관들이 옷이 벗겨지는 것을 각오하고[* 실제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에게 소모전을 강요하며 영국군의 자신감을 끌어올린 [[클로드 오킨렉]]은 처칠의 공격 독촉을 상큼히 씹고 방어진지를 고수하다가 [[버나드 로 몽고메리|몽고메리]]로 갈려버렸다. 물론 몽고메리는 오킨렉보다 더한 장군이었고 자신이 독일군을 완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때까지 엘 알라메인 방어선에 틀어박혀있었다.] 뜯어말릴 수 있었기 때문에 부각이 덜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